스마트시티?

시사 2020. 8. 17. 16:52

정책연구자에게 ‘스마트(smart)’라는 말은 매우 곤혹스러운 용어이다. 도무지 뜻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분야에 활용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기기 또는 서비스들에 ‘e(electronic)’, ‘i(intelligent)’, u(ubiquitous)’ 또는 ‘스마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마트’는 왜 이전의 다른 인기어들처럼 s라고 축약해서 쓰지 않았을까?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추측된다. 첫째, ‘스마트’는 유일하게 한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짧고 부르기 편해서 그랬을 것이다. 둘째, 기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전 단어들과 달리 일상에서 쓰는 단어였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셋째, e나 i는 전자 또는 IT를 상징하는 알파벳으로 비교적 역사가 깊다. (u는 좀 뜬금 없지만 어차피 풀어 쓴 단어도 매우 낯설기 때문에 아마도 신비감을 어필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반면 s는 IT랑은 상관없었고 스마트 외에 연상되는 다른 단어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special이라던가) 어쨌든 e, i, u, 스마트 모두 컴퓨터나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뜻을 갖고 있고, 이름에 저 말이 붙으면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스마트’의 인기에 힘입어 언제부턴가 ‘스마트시티’란 말이 등장했다. 이 단어가 얼마나 맘에 들었는지 사람들은 기존의 U-시티 법을 아예 고쳐서 유비쿼터스시티를 죄다 스마트시티로 바꿔 버렸다. 여러 가지 신기술을 통해 도시 문제가 해결되는 도시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스마트시티는 기존의 도시와 차별화될 수 없다.


첫째, 신기술을 적용해 만드는 도시라는 건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도시를 지탱하는 기술은 언제나 꾸준히 발전해 왔고 그에 따라 도시도 발전해 왔다. 스마트시티법에 따르면 ‘건설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융복합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를 스마트시티라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는 이미 스마트시티이다.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도시서비스들은 알고 보면 엄청난 신기술의 집합체들이다. 대중교통 환승 시 이동구간에 따라 요금 할인 폭이 달라지고, 정류장에 서 있으면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예상 대기시간을 알 수 있으며, 광역버스는 버스 외벽에 잔여 좌석 수가 표시된다. 모든 택시는 GPS 내비게이션을 사용해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에 대한 안내를 받는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주차시설은 이제 주차 카드를 뽑지 않고 번호판 인식으로 입장하며, 건물 내 상점에서 주차 할인을 받을 경우, 내차 번호 네 자리를 점원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도시서비스가 첨단기술을 활용해 제공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는 도시 전역에 걸쳐 매우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통신망과 전력망 외에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오차 없는 센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서비스들은 대부분 첫 번째 아이폰이 나온 시기보다 늦게 대중교통 서비스에 도입됐을 만큼 새로운 기술들이다. 유비쿼터스시티나 스마트시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사람들은 막연히 ‘첨단 기술로 만드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도시’를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고 청사진을 만들었겠지만 도시는 언제나 쉼 없이 꾸준히 기술적으로 발전해 왔다. 기술은 많은 도시의 과제를 해결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도시 문제들은 개선되고는 있지만 언제 어느 수준으로 개선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시를 구성하는 기술의 이러한 속성을 이해하고 나면 ‘스마트시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둘째, 그렇다면 매우 획기적인 기술로 인해 지금과는 크게 다른 도시를 만들 수 있다면 스마트시티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다 하더라도 도시는 획기적으로 변할 순 없다. 도시가 가진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생물 종들은 진화할 때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에서의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와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경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도시도 이러한 경로의존성을 매우 강하게 갖고 있다. 도시 인프라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술이 나와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순 없다. 인프라 교체시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시민들에게 하루아침에 그 방식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일반도로에 오직 자율주행차만이 달리게 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게 사람에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고 자율주행차의 운전능력은 언젠가 인간을 까마득히 앞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율주행차의 개발에서 가장 큰 난관을 겪고 있는 분야는 인간이 운전하는 차량과의 상호작용이다. 사람의 도로운전을 금지시키고 일반도로를 자율주행차 전용도로로 만든다면 현재 연구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율주행 중심의 미래 교통시스템에 보다 빨리 다가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는 경로의존적 발전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기술은 많지만 그것을 도시에 적용하려면 대부분 경로의존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유일한 해법은 기존의 시스템과 공존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로의존성은 스마트시티인 것과 스마트시티가 아닌 것의 구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셋째, 우리가 안고 있는 도시 문제는 첨단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만약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도시 문제가 있다면 스마트시티의 개념을 빌리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하다. U-시티법을 스마트시티법으로 개정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U-시티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취지로 몇 가지 개념이 추가되었고 이는 개정된 법이나 시행령 또는 정부의 기본계획에도 반영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민간의 참여 기회를 늘려 정부 주도에서 탈피하고, 교통, 방범 등 도시 인프라 중심에서 벗어나 행정,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며, 신도시 중심의 개발사업에 국한했던 것을 도시재생을 포함하여 기존 도시에까지 그 적용 대상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스마트시티와 상관없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고, 또한 스마트시티법과 상관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행정의 스마트화는 정부가 ‘국가정보화기본계획’을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한때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는데 U-시티 또는 스마트시티와는 관계가 없다. 교육 분야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2002년부터 구축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이 또한 스마트시티와 관계없다. 다시 말하면 스마트시티가 말하는 차별점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도시 기능 즉 인프라 영역을 제외하면 차별화할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은 것일 뿐 그것이 도시 기능과 결합하면 무엇이 어떻게 더 좋아지길래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다양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의 흐름을 보면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불평등, 고령화, 사회갈등, 실업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도시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첨단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도시서비스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도시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시민이 바라는 도시의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해 때로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너무나 크고 넓으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를 모두 아우를 큰 틀에서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의미 없을 만큼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또한 스마트시티는 U-시티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문제 해결에 있어서 기술이 갖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지금 무엇이 진정으로 스마트한 도시인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서울시산학연협력포럼에서 요청받고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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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고용 동향

시사 2018. 8. 27. 18:02

이걸 보기 전에 먼저 보면 좋은 글: 고용 통계 기본 용어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고용 동향을 매달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달엔 유달리 "일자리 상황이 나빠졌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고 그 보도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이 <2018년 7월 고용 동향>이라 한번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2018년 7월 고용동향>은 2018년 8월 17일 쯤에 통계청에서 발표됐다. 거기서 나온 주요 수치는 대략 이러하다.

 

출처: <2018년 7월 고용동향>, 통계청

 

참고로,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고용률은 61.3%인데, OECD에서는 고용률 계산할 때 65세 이상 인구는 빼고 하기 때문에 통계청에서는 두 가지를 다 보여주고 15-64세 기준 고용률인 67.0%옆에는 'OECD 비교기준'이란 말을 써 놨다. 1999년 6월부터 지금까지 대략 19년 동안 취업자수를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우리나라 취업자수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그림만 보면 일단 규칙적인 패턴을 반복하면서 꾸준히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 왔고 최근에 뭐 특별히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걸로 보이진 않는다. 고용은 계절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일년 중 사람을 뽑는 시기와 내보내는 시기가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증가했다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고용이나 취업의 변화를 볼 땐 지난 해 같은 달 수치와 비교한다. 이걸 전년동월대비라 한다.

 

고용률(15세 이상)은 전년동월 대비 0.3%p 떨어졌고 OECD 기준 고용률(15-64세)은 전년동월 대비 0.2%p 떨어졌다. 29세 이하와 60세 이상에서 0.2%p씩 조금 상승하고 40대에서 0.7%p가 하락했다고 나온다.

 

 

출처: <2018년 7월 고용동향>, 통계청

 

산업별로는 저렇게 나왔다고 한다. 위에 그림은 아마 산업 대분류 기준으로 취업자수가 늘어난 산업 1, 2, 3위와 취업자수가 감소한 산업 1, 2, 3위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 보건업및사회복지서비스업, 정보통신업, 금융및보험업 취업자가 늘어났고 제조업, 사업시설관리지원및임대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에서 줄어들었다. 암튼 이렇게만 보면 보건업및사회복지서비스업은 성공했고, 제조업은 망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안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분류로 내려가서 살펴 봐야 할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난 바빠서 이만...)

 

2018년 7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통해 조사된 우리나라 취업자수는 2,708만 3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천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5천명이란 숫자가 언론에서 얘기하는 "고용쇼크"의 근거가 됐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예산을 많이 쓰고 했는데, 일년동안 불과 5천개의 일자리 밖에 못 만들었다."는 스토리가 여기서 나온다. 근데 바로 지난달 2018년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년동월대비 취업자수 증가가 10만 6천 4백명이라고 나오는데 지난달을 기준으로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작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일년동안 1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라는 얘기가 되는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한달 만에 완전히 딴 얘기가 되냐고

결국 이것도 전체 그림을 보고 구조적인 특징을 파악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음 그림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를 가지고 전년동월대비 취업자수 변화를 뽑은 것이다.

 

전년동월대비 취업자수 증감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단위: 천명)

 

구조적 특징이 보이시는지? 나는 잘 안 보인다. 이번달에 5천명이 나와서 큰일이라고 하는데 당장 다음달인 2018년 8월 고용동향에 10만이나 20만이 찍힌다 하더라도 그리 신기하진 않을 것 같다. 그땐 또 뭐라고 할건가 (물론 마이너스가 찍힐 수도 있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우리나라의 지난달 고용률(전체 61.3%, OECD기준 67%)이나 실업률(3.7%)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감을 잡기 위해서 해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고용률과 실업률의 변화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의 고용률, 실업률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 고용률의 변화를 보자.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단위: %)

 

최근엔 규칙적인 패턴 중에 높을 땐 61% 이상, 낮을 땐 59% 전후를 찍고 있는 수준인데 뭔 일이 있었던 2010년 전후를 제외하고 나면 과거에 비해 근소하게 올라갔다. 우리나라 고용 구조가 극적으로 변한 것이 1997년일 테니 그 전후를 비교해 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싶지만 불행히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통계청 데이터에는 그 시절 데이터가 없다.

 

아래 그림은 우리나라 고용률을 OECD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것이다.

 

2018년 2/4분기 OECD 국가 고용률 비교(15-64세 기준)

자료: OECD (단위: %))

 

글씨가 작아서 잘 안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OECD 36개국 중 아홉번째로 고용률이 낮은 편에 속하며 OECD 평균보다 1.6%p 낮다.)

 

다음으로 실업률)

 

우리나라 실업률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단위: %)

 

고용률보다는 불규칙적이지만 이것도 1년 주기로 패턴이 있다. 해마다 2월에 고용률이 아래로 제일 뾰족하고 실업률은 위로 제일 뾰족한 거 보면 3월에 다시 뽑았다가 일년동안 일 시키고 1, 2월에 짜르는 회사들이 많은가보다. 최근엔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좀 떨어지는 듯 보였다가 2015년부터 다시 안 좋아졌다.

 

2018년 2/4분기 OECD 국가 실업률 비교(15-64세 기준)

자료: OECD (단위: %)

 

실업률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OECD 안에서 꽤 좋은 나라이다. (근데 그럴 리가 없으니 실업률이 믿을만한 지표가 아닌 것이지.) OECD 36개국 중 여덟번째로 낮고, 평균(5.4%)보다 1.6%p 낮다.

 

교훈:

고용의 패턴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용 상황이 변하는 데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장기적인 걸 봐야 하고 추세적인 특성을 봐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다.

 

최근에 상황이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2018년 7월 전년동월대비 취업자수가 5천명 증가한 것을 "고용참사"나 "고용쇼크"라고 부르는 건 좀 과장이다.("4차 산업혁명"에 비하면 과장이 아닌 걸지도)

Posted by juj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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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통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될 게 있는데 좀 헷갈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용어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나 둘다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인 건 맞는데, 실업자는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으나 취업에 성공하지 못해서 돈을 못버는 사람이고 비경제활동인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발적으로 돈을 안 버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자리를 알아 봤는데 직업을 못 구해서 실업자였던 사람이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하게 되면 비경제활동인구가 된다. 고용지표로 제일 널리 쓰이는 것은 실업률과 고용률이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대비 실업자 비율이다.

 

 

실업자는 적극적 구직활동을 하면서 직업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자리 알아보는 걸 포기했던 사람들이 대거 의욕이 생겨 갑자기 죄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똑갈은 일자리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단 적극적 구직과 구직 포기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도 어렵거니와 실업자가 구직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쁜 상황임에도 실업률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엔 고용률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이다.

 

 

취업률은 사람들이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사이에서 오가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고용정책을 펼칠 때 취업률만 알고 있다면 필요한 일자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껏 일자리를 만들어 줬더니 원래 아무도 취직할 생각이 없었다던가...) 그래서 두 수치를 같이 본다.

 

다음으로, 취업과 고용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취업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얻은 것이다. 아무도 나를 안 뽑아 주면 내가 회사를 차려도 취업이 된 것이다. 고용은 임금근로자, 즉 누군가 임금을 지급하고 고용한 경우만 해당한다. 따라서 취업자수에는 자영업자가 포함되고 고용에는 제외된다. (자영업자 뿐만 아니라 무급가족종사자도 제외된다.)

 

 

그래서, 15세 이상 인구 대비 취업자수를 고용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 누군가가 잘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취업자수, 고용률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만들고, 고용통계와 실업률은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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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j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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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virtual currency),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엄밀히 말하면 뜻이 좀 다르지만 일일이 따지기 귀찮아서 정의는 생략하고 대충 섞어 썼습니다. - 주

 

블록체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가진 신원미상 인물이 만든 (것으로 나오는) 암호화폐 비트코인(bitcoin)의 위변조 및 이중지불 방지 기술이다. 정작 사토시가 2008년에 쓴 논문에는 비트코인이란 이름은 나와도, 블록체인이란 이름은 없다. 다만 논문에서 사토시는 '전자 코인을 디지털 서명의 체인으로 정의'했고, 블록을 생성하는 원리를 설명했기 때문에 나중에 누군가가 뜻을 잘 살려 붙인 이름인 듯하다. 비트코인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대규모 양적완화로 인한 달러화 가치 하락을 겪으면서, 중앙은행과 같은 통화기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던 무렵에 탄생한, 제3자의 간섭 없이 돌아갈 수 있는 가상화폐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네트워크 기반의 가상화폐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첫째, 비잔티움 장애 허용(Byzantine Fault Tolerance)

 

이건 '비잔틴 장군의 문제'라고 이름 붙여진 네트워크 안정성에 관한 문제로, 1982년 (LaTeX 개발자로 유명한) 레슬리 람포트(Leslie Ramport)가 처음 제기한 문제다. 이게 뭐냐 하면 네트워크의 일부가 공격을 받아 위변조가 발생해도 올바른 원본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가상화폐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동전이나 지폐가 없이 오직 전자 정보로만 가치가 유효하기 때문에 해킹 공격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 가상화폐가 이용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였다.

 

둘째, 이중지불(double spending)

 

고의든 아니든 가상화폐는 같은 돈을 두 명의 다른 사람에게 지불하거나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지불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본인의 논문 'bitcoin'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디지털 서명과 작업증명(proof-of-work)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_ 거래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내가 가진 가상화폐에 대한 소유권이 유효하려면 내 이름으로 된 지갑에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그 기록이 다른 모든 사용자들로부터 사실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중지불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래내역을 네트워크의 모든 참가자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전부 공개된다고? 싫다."

 

오해하지 마시라. 거래 내역이 해시(hash) 함수를 통해 암호로 변환된 값이 네트워크의 모든 노드와 공유한다는 뜻이니까. 내가 거래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내용을 볼 수는 없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거래가 어떻게 기록으로 남는지 살펴보자. A가 B에게 코인을 준다면 그 코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만들어져 붙는다.

 

1) 이전의 거래 + 돈 받을 사람의 public key(계좌번호)를 해시로 변환한 값

2) 돈 보내는 사람의 서명

 

이 두가지를 합쳐서 새로운 거래가 된다. 이 새로운 거래는 다음 거래가 발생할 때 돈 받을 사람의 public key와 함께 해시로 변환된다. 즉, 새로운 거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이전 거래 기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기록은 계속 연결되고 그래서 체인이라고 부른다.

 

2_ hash는 암호화기술이다

 

비트코인에서는 해시 함수를 많이 쓴다. 해시란 임의의 길이의 데이터를 고정된 길이의 데이터로 바꿔주는 함수이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쓰는 SHA256 해시 함수는 다음과 같이 문자열을 64자리 16진수로 변환한다.

 

문자열 '1'을 해시 함수로 변환하면,

 

6b86b273ff34fce19d6b804eff5a3f5747ada4eaa22f1d49c01e52ddb7875b4b

 

문자열 '2'를 해시 함수로 변환하면,

 

d4735e3a265e16eee03f59718b9b5d03019c07d8b6c51f90da3a666eec13ab35

 

이번엔 에미넴의 노래 'Lose Yourself'의 가사 앞부분을 변환해 보자.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 There'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mom's spaghetti He's nervous, but on the surface he looks calm and ready To drop bombs, but he keeps on forgettin''를 해시 함수로 변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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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과를 얻는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해시 함수의 특징이 있다.

 

1) 입력값이 같으면 출력값도 항상 같다.

2) 입력값이 조금만 달라도 완전히 다른 출력값이 나온다.

3) 입력값이 아무리 짧거나 아무리 길어도 항상 같은 길이의 출력값이 나온다.

4) 출력값을 보고 입력값을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내가 원하는 출력값이 나오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에서는 작업증명 수단으로 hash 함수를 사용한다.

 

3_ 이중지불의 문제는 timestamp로 해결한다

 

거래(transaction)가 발생하면 거래기록에 시간도장(timestamp)을 찍는다. 새로운 거래기록은 이전 거래기록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만약 이중지불이 일어나면 같은 이전 거래기록을 가진 두 개의 서로 다른 새로운 거래기록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 두 개의 기록에 시간도장이 찍혀 있다면 시간상 먼저 발생한 거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폐기하면 된다. 이것으로 이중지불을 해결할 수 있다.

 

4_ 비잔틴 장군 문제는 작업증명(proof-of-work)으로 해결한다

 

여기서 채굴이란 개념이 나온다. 비트코인은 10분 동안 네트워크에서 일어난 모든 거래기록을 모아 hash로 변환하고 블록을 만든다. 블록을 만드는 주체는 네트워크 노드라고 불리는 참가자들인데, 비트코인은 이 블록을 그냥 만들게 놔두지 않고 노가다를 시킨다. 그 노가다의 내용이란

 

1) 10분 동안의 거래기록에 값 하나를 붙여라. 그 값을 nonce라고 부른다.

2) nonce 값은 내가 맘대로 정할 수 있다. 대신

3) nonce와 함께 hash로 변환한 결과는 앞에 0이 열개 붙어야 한다.

 

저 '0 열개'가 바로 노가다의 양을 결정짓는 난이도 되시겠다. (난이도는 얼마나 빨리 블록이 생성됐냐에 따라 자동으로 조정된다. 빨리 생성됐으면 난이도가 올라가고 느리게 생성됐으면 난이도가 내려간다. 0의 개수가 달라지겠지.)

 

해시 함수의 특징으로 소개한 것들 중에 다섯번 째가 바로 원하는 출력값이 나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앞에 0이 열개 붙는 출력값이 나오게 하라니? 다른 방법이 없다. 결국 우연히 그런 값이 나올 때까지 다른 nonce 값을 넣어서 hash 함수를 써보는 방법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0이 열개 붙는 hash 결과가 나올 확률이 얼마냐면 16의 10승 분의 1, 즉 2의 40승 분의 1이다. 대략 1조 분의 1 정도 된다. 같은 짓을 1조 번 반복해 시도하면 그 중에 한번 정도 저 값이 나온다는 얘기다. 조건을 만족하는 hash 값이 나오게 하는 nonce 값을 가장 먼저 찾은 노드는 블록을 완성하고 보상으로 12.5btc를 받는다. 이걸 채굴이라고 한다. 흔히 채굴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서 비트코인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답이 맞을 때까지 수없이 아무 답이나 써보고 찍는 거에 가깝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일까? 바로 비잔틴 장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노드들이 작업증명을 하게 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생긴다.

 

1) 만약 해커가 비트코인 거래기록을 위변조하려면 노드가 되어 위변조된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을 만들어 붙여야 하고, 그러려면 저 노가다를 해야 한다.

2) 그런데 그렇게 만든 블록도 다른 노드가 만든 블록이랑 비교해 다수결에서 밀리면 폐기된다.

3) 그래서 확실히 위변조에 성공하려면 작업증명 노가다를 하는 과반수의 노드를 확보해야 한다.

4) 일단 그런 컴퓨팅 파워를 해커가 갖는 게 불가능하지만 만약 가졌다고 하면 그것은 이 시스템의 주인이 되는 것과 다름없어지는 것이고, 위변조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채굴로 보상을 받고, (자기 꺼인) 네트워크를 살리면서 얻는 이익이 더 클수밖에 없다.

 

이래서 비잔틴 문제가 해결된다. 즉, 작업증명이라 불리는 채굴 노가다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공격하려는 해커들의 이점을 없애기 위해 괜히 시키는 삽질이라고 할 수 있다.

 

5_ 블록이 계속 쌓이면 언젠가 디스크 공간이 터지는 것 아님?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고 나면 그 이전의 거래 기록은 꼭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 거래는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합쳐서 hash로 변환해 블록에 넣는다. 이전 거래정보가 아무리 많아 봤자 hash로 변환하면 32byte밖에 안된다. 이것을 Merkle Root라고 한다.

 

암튼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은 이런 원리로 작동한다.

 

6_ 비트코인은 2100만개까지만 생산된다는데

 

최초의 비트코인은 2008년 (아마도 7월)에 거래가 발생했다. 그 때 이후로 10분마다 한번씩 블록이 생겼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블록이 생길 때마다 최초의 nonce 값을 찾은 사람이 50btc를 가져갈 수 있으며, 보상금은 액수는 4년이 지나면 절반으로 감소하도록 규칙을 짰다. 그러니까 2012년 7월 이후로는 블록 생성 보상이 25btc가 되었으며, 2016년 7월 이후로는 12.5btc가 되었다. 아마도 2020년 7월이 지나면 6.25btc가 될 것이다. 무한등비급수를 써서 계산해 보면 앞으로 생산될 비트코인의 총액이 나온다.

 

하루 24시간을 10분으로 나누면 하루에 144개의 블록이 생성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초기값을 계산해보면 블록 하나당 50btc, 하루에 144블록, 1년이 365일, 그리고 4년(윤년 포함) 해서

 

50 x 144 x (365 x 4 + 1) = 10,519,200

 

즉, 처음 4년 만에 10,519,200 btc가 생기고, 그 다음 4년이 지나면 그것의 절반인 5,259,600btc가 생긴다. 전부 합하면

 

10,519,200 / (1 / 0.5) = 21,038,400btc

 

이렇게 된다. 이 숫자가 앞으로 생산된 비트코인의 최대치이다. 계산 결과에 의하면 알려진 것보다 38,400이 더 나오는데 저 숫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 나도 잘 모르겠다. 만약에 비트코인의 채굴이 다 끝나면 노가다를 하는 네트워크 노드들은 어떤 보상을 받는가? 그땐 거래 수수료를 올려 받아서 보상받는다.

 

사토시가 고안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적어도 지금의 상상력으로는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 같은 보안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총통화량이 정해져 있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중앙기관을 배제한 통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혁명적 발명이라 할 수 있다. 중앙기관이 없어서 좋은 점은 무엇일까? 일단 하나 있기는 하다. 기관이 일을 너무 못해서 기존의 통화체계가 완전히 망가졌을 때도 비트코인은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거다.

 

비트코인이 꼭 장점만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화폐의 가치는 통화량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시스템의 신뢰도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암호화폐 가치가 큰 변동성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정확한 가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장래에 비트코인의 사용처가 지금보다 명확해지면 변동성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블록체인 시스템의 보안 문제가 단 한번이라도 발생할 경우엔 하루아침에 거품이 될 위험도 상존한다.

 

국가경제에 암호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자국 통화만을 통제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그 영향력이 점점 약화될 것이다. 통화정책은 특정 국가 내에서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경기 침체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암호화폐의 비중이 커질수록 그 기능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암호화폐가 앞으로 어떻게 쓰이게 될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작년 한해 우리나라에서 불어닥쳤던 비트코인 투기 광풍은 알파고나, 사물인터넷 따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혁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줬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까지 거론하면서 강하게 압박하고, 논객들이 암호화폐를 "금융사기"로 몰아가는 모습은 통제가 불가능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이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피하게 된다. 하지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두려움은 일파만파가 된다. 방법은 하나.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혁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Nakamoto, Satoshi.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2008).

https://blog.iwanhae.ga/introduction_of_bit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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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음의 개념을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은 생략합니다:

양면시장, 멀티호밍, 싱글호밍

 

망중립성이란 비트나 패킷을 용도나 사용자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망중립성 이슈를 둘러싸고 AT&T, Verizon, 케이블TV 사업자 등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구글, 페이스북 등 CP(콘텐츠 제공자)는 오랫동안 논쟁을 해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SKT와 kt가 ISP이고, 네이버나 카카오가 CP이다.) 논쟁의 숨은 본질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저마다 간과할 수 없는 명분을 갖고 있다. 망중립성 이슈를 ISP와 CP 사이의 문제로 좁히면 'ISP는 CP에게 추가적인 요금을 부과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질문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면 'ISP는 더 빠른 속도의 네트워크를 원하는 일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요금을 더 받아도 되는가'가 된다. 이런 질문들이 모두 '망중립성을 폐지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해당한다. ISP는 망중립성 폐지를 원하고 또 주장한다. 시장의 원리상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CP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히 시장원리에 부합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유인이 줄어들어 사회적 후생이 감소할 것이라는 것이 ISP의 주장이다. CP는 망중립성 유지를 원하고 또 주장한다. 인터넷 접속 시장에서 ISP의 지위는 이미 독점적이며, 접속에 대한 요금을 ISP 마음대로 하게 둔다면 오직 ISP의 배만 불릴 뿐 후생 증대는 일어나지 않고, 시장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망중립성 철학을 통해 이용자에게 차별 없는 인터넷 이용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며, ISP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자를 차별한다면 앞으로 인터넷의 발전은 가로막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은 상충하지만 둘 다 '시장 원리'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짜 시장 원리일까. 망중립성은 정책의 관점에서도 상충하는 논리가 존재한다. 참고로 방통위와 미래부는 각각 2011년, 2013년에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여 발표하였지만 kt가P2P 사업자의 트래픽을 차단한 행위와 관련된 소송에서 법원과 규제당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망중립성 원칙은 상당부분 훼손된 지 오래다. 미국 정부는 망중립성이 인터넷 발전과 기술혁신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최소한의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오바마 정부는 인터넷의 망중립성 원칙을 지지했다. 미국은 2015년 FCC가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Order)을 통과시키면서 브로드밴드 사업자에 대한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재확인하였으나, 대선 기간 중 망중립성 폐기를 주장하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변했고, 2017년12월 14일, 마침내 FCC에서 폐기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다. 미국 20여개 주 검찰총장이 망중립성 폐기 결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낸 상태고 앞으로 기나긴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시장실패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에서 가격의 차별화는 소비자 잉여를 생산자에게 전이시킬 뿐 사회적 후생의 증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망중립성 체제가 시장원리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플랫폼 사업자의 행위를 설명하는 양면시장 이론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Armstrong(2006)은 경쟁적 병목 하에서 다른 규제가 없으면 균형에서 멀티 호밍하는 시장 참여자의 수는 사회적 후생을 최적화시키는 수준에 못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만약 AT&T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상대로 추가 요금을 받기 시작하면 둘 중 한 기업은 없어지거나 쫄아들 수도 있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해라는 얘기다. 결국 쟁점은 1) 인터넷 접속 시장이, 과점적 ISP가 멀티 호밍하는 CP와 싱글호밍하는 엔드 유저를 매개하는 경쟁적 병목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와, 2) 만약 인터넷을 경쟁적 병목으로 가정할 수 있을 경우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적 후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로 좁혀질 수 있다. Economides와 Tåg(2012)는 경쟁적 병목인 양면시장 모형을 가정하고,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파라미터 구간이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즉, 인터넷 접속 시장에서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 후생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만, Economides와 Tåg의 연구는 몇가지 단점이 있는데, 일단 엔드 유저가 멀티 호밍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인터넷 시장이 경쟁적 병목이냐에 대한 논쟁을 피해 갔다는 것이고, 또한 일반적인 경쟁적 병목의 상황에 망중립성 규제의 효용이 입증되고 있는 게 아닌데, 논문에서 말하는 그 '파라미터 구간'이 실제 시장의 어느 상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 연구를 망중립성 옹호의 근거로 사용하기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 양면시장 이론은 망중립성 이슈를 명쾌하게 풀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어쩌면 망중립성 이슈를 보다 명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적 병목이 아닌 새로운 모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문헌

 

Armstrong, M. (2006). Competition in two‐sided markets. The RAND Journal of Economics, 37(3), 668-691.

 

Economides, N., & Tåg, J. (2012). Network neutrality on the Internet: A two-sided market analysis. Information Economics and Policy, 24(2), 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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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개념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 생략합니다:

완전경쟁시장, 독점, 시장의 실패, 사회적 후생

 

독점시장에서 독점공급자는 가격을 올려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킬 수 있는데,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규제를 만들어 독점공급자가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만들어 사회적 후생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부가 독점시장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시장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농부 박씨가 석류 시장의 100%를 차지하고 있으면 박씨가 독점공급자일까? 독점공급자로 지정되어 규제를 받고 싶지 않은 박씨는 '과일 시장에서 석류의 비중은 10%도 안 되니 자신은 독점공급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시장을 석류시장으로 하는 것이 맞을까, 과일 시장으로 하는 것이 맞을까. 그 기준은 무엇으로 정할까. 시장의 범위를 정하는 행위를 '시장획정(market definition)'이라 하고, 시장획정을 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가 바로 SSNIP (small significant non-transitory increase in price, 작지만 유의미하고 일시적이지 않은 가격 인상) 테스트이다. HM (hypothetical monopolist) 테스트라고도 부른다. 석류 시장을 박씨가 지배하는 독점시장으로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박씨 혼자 석류 가격을 올려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석류를 팔고 있는 다른 경쟁자가 시장에 있다면 당연히 박씨는 석류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는 모두 경쟁자의 석류를 사게 될 테니까. 그런데 경쟁하는 석류 생산자가 없더라도 박씨가 석류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석류 가격이 올랐을 때 소비자들이 비싼 석류 대신 귤이나, 파인애플, 배 같은 다른 과일을 사 먹는 경우가 그것이다. 시장이 '석류 시장'으로 획정될 지, '과일 시장'으로 획정될 지는 석류가 다른 과일로 얼마나 많이 대체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자 이제, 석류 시장에 대한 SSNIP 테스트를 설명하기로 한다. 박씨가 독점사업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여기서 박씨를 가설적 독점사업자(hypothetical monopolist)라 부른다. 박씨가 석류 가격을 p에서 Δp만큼 올려서 p+Δp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하향하는 수요곡선을 가정했을 때, 판매량은 q에서 Δq만큼 감소해 q-Δq가 될 것이다. 그림으로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에서 박스 L은 가격 인상으로 인한 박씨의 손실이 되고, 박스 B는 박씨의 이득이 된다. 만약 가격을 올렸을 때, 박스 B가 박스 L보다 크면 박씨는 가격 인상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는 것으로 분명히 가격을 올릴 것이다. 만약 박스 B가 박스 L보다 작으면 박씨는 가격 인상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손실은

이득은

이다. 따라서,

 

이면 손실이 이득보다 커서 박씨는 가격을 못 올린다. 즉, 석류 시장은 독점 시장이 아니고 박씨는 가격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양변을 pq로 나누어 식을 손실률 Δq/q 에 관한 식으로 좀 더 예쁘게 정리해 보자.

여기서,

M=(p-mc)/p을 마진율이라 하고, X=Δp/p를 가격 인상율이라 하면 가격인상 시 손실이 이득보다 커지는 조건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이때, X/(X+M)을 임계손실(critical loss)이라 부른다. 즉, SSNIP 테스트는 손실률이 임계손실보다 큰가 작은가를 판정하는 테스트라서 임계손실분석(critical loss analysis)라고도 부른다..

 

석류 시장에서 가설적 독점공급자인 박씨를 대상으로 한 SSNIP 테스트에서 손실률이 임계손실보다 크면 박씨는 독점공급자의 혐의를 벗고, 석류 시장은 관련시장(relevant market)으로 획정(definition)되지 못한다. 그러면 다음 단계는? 시장의 범위를 넓혀서 다시 SSNIP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이다. 시장의 범위가 넓어지면 점점 대체 가능성은 낮아지고, 손실률이 임계손실보다 낮아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마침내 손실률이 임계손실보다 낮아졌을 때, 테스트를 종료하고 해당 시장을 관련시장으로 획정한다. 따라서, 관련시장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관련시장: SSNIP 테스트에서 "손실률이 임계손실보다 작다"는 조건을 만족하는 최소 규모의 시장.

 

실제로, SSNIP 테스트를 할 때 문제가 있다. 첫째, 마진율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업의 한계 비용(mc)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평균가변비용을 대신 쓴다. 평균 가변비용은 기업의 분기 보고서에 나온 총비용 중 보험료, 감가상각 등 고정비용에 해당되는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를 총가변비용으로 하고 이를 판매량으로 나눠서 산출한다. 둘째, 실제로 가격을 올려서 시장에서 어떻게 수요가 줄어드는지를 관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설문조사를 한다. "석류 가격이 5%(또는 10%) 올랐다면 그래도 석류를 사시겠습니까, 석류를 안 사고 다른 과일로 사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서 석류 수요가 얼마나 줄어들 지를 보고 석류에 대한 수요 곡선을 그린다..

 

SSNIP 테스트는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가 무역위원회(Federal Trace Commission)와 함께 작성한 'Horizontal Merger Guidelines'에 소개가 되어 있다고 한다. EU에도 비슷한 내용의 합병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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