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음의 개념을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은 생략합니다:

양면시장, 멀티호밍, 싱글호밍

 

망중립성이란 비트나 패킷을 용도나 사용자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망중립성 이슈를 둘러싸고 AT&T, Verizon, 케이블TV 사업자 등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구글, 페이스북 등 CP(콘텐츠 제공자)는 오랫동안 논쟁을 해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SKT와 kt가 ISP이고, 네이버나 카카오가 CP이다.) 논쟁의 숨은 본질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저마다 간과할 수 없는 명분을 갖고 있다. 망중립성 이슈를 ISP와 CP 사이의 문제로 좁히면 'ISP는 CP에게 추가적인 요금을 부과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질문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면 'ISP는 더 빠른 속도의 네트워크를 원하는 일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요금을 더 받아도 되는가'가 된다. 이런 질문들이 모두 '망중립성을 폐지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해당한다. ISP는 망중립성 폐지를 원하고 또 주장한다. 시장의 원리상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CP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히 시장원리에 부합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유인이 줄어들어 사회적 후생이 감소할 것이라는 것이 ISP의 주장이다. CP는 망중립성 유지를 원하고 또 주장한다. 인터넷 접속 시장에서 ISP의 지위는 이미 독점적이며, 접속에 대한 요금을 ISP 마음대로 하게 둔다면 오직 ISP의 배만 불릴 뿐 후생 증대는 일어나지 않고, 시장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망중립성 철학을 통해 이용자에게 차별 없는 인터넷 이용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며, ISP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자를 차별한다면 앞으로 인터넷의 발전은 가로막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은 상충하지만 둘 다 '시장 원리'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짜 시장 원리일까. 망중립성은 정책의 관점에서도 상충하는 논리가 존재한다. 참고로 방통위와 미래부는 각각 2011년, 2013년에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여 발표하였지만 kt가P2P 사업자의 트래픽을 차단한 행위와 관련된 소송에서 법원과 규제당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망중립성 원칙은 상당부분 훼손된 지 오래다. 미국 정부는 망중립성이 인터넷 발전과 기술혁신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최소한의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오바마 정부는 인터넷의 망중립성 원칙을 지지했다. 미국은 2015년 FCC가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Order)을 통과시키면서 브로드밴드 사업자에 대한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재확인하였으나, 대선 기간 중 망중립성 폐기를 주장하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변했고, 2017년12월 14일, 마침내 FCC에서 폐기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다. 미국 20여개 주 검찰총장이 망중립성 폐기 결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낸 상태고 앞으로 기나긴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시장실패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에서 가격의 차별화는 소비자 잉여를 생산자에게 전이시킬 뿐 사회적 후생의 증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망중립성 체제가 시장원리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플랫폼 사업자의 행위를 설명하는 양면시장 이론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Armstrong(2006)은 경쟁적 병목 하에서 다른 규제가 없으면 균형에서 멀티 호밍하는 시장 참여자의 수는 사회적 후생을 최적화시키는 수준에 못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만약 AT&T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상대로 추가 요금을 받기 시작하면 둘 중 한 기업은 없어지거나 쫄아들 수도 있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해라는 얘기다. 결국 쟁점은 1) 인터넷 접속 시장이, 과점적 ISP가 멀티 호밍하는 CP와 싱글호밍하는 엔드 유저를 매개하는 경쟁적 병목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와, 2) 만약 인터넷을 경쟁적 병목으로 가정할 수 있을 경우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적 후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로 좁혀질 수 있다. Economides와 Tåg(2012)는 경쟁적 병목인 양면시장 모형을 가정하고,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파라미터 구간이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즉, 인터넷 접속 시장에서 망중립성 규제가 사회 후생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만, Economides와 Tåg의 연구는 몇가지 단점이 있는데, 일단 엔드 유저가 멀티 호밍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인터넷 시장이 경쟁적 병목이냐에 대한 논쟁을 피해 갔다는 것이고, 또한 일반적인 경쟁적 병목의 상황에 망중립성 규제의 효용이 입증되고 있는 게 아닌데, 논문에서 말하는 그 '파라미터 구간'이 실제 시장의 어느 상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 연구를 망중립성 옹호의 근거로 사용하기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 양면시장 이론은 망중립성 이슈를 명쾌하게 풀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어쩌면 망중립성 이슈를 보다 명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적 병목이 아닌 새로운 모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문헌

 

Armstrong, M. (2006). Competition in two‐sided markets. The RAND Journal of Economics, 37(3), 668-691.

 

Economides, N., & Tåg, J. (2012). Network neutrality on the Internet: A two-sided market analysis. Information Economics and Policy, 24(2), 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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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j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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