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시사 2020. 8. 17. 16:52

정책연구자에게 ‘스마트(smart)’라는 말은 매우 곤혹스러운 용어이다. 도무지 뜻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분야에 활용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기기 또는 서비스들에 ‘e(electronic)’, ‘i(intelligent)’, u(ubiquitous)’ 또는 ‘스마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마트’는 왜 이전의 다른 인기어들처럼 s라고 축약해서 쓰지 않았을까?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추측된다. 첫째, ‘스마트’는 유일하게 한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짧고 부르기 편해서 그랬을 것이다. 둘째, 기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전 단어들과 달리 일상에서 쓰는 단어였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셋째, e나 i는 전자 또는 IT를 상징하는 알파벳으로 비교적 역사가 깊다. (u는 좀 뜬금 없지만 어차피 풀어 쓴 단어도 매우 낯설기 때문에 아마도 신비감을 어필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반면 s는 IT랑은 상관없었고 스마트 외에 연상되는 다른 단어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special이라던가) 어쨌든 e, i, u, 스마트 모두 컴퓨터나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뜻을 갖고 있고, 이름에 저 말이 붙으면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스마트’의 인기에 힘입어 언제부턴가 ‘스마트시티’란 말이 등장했다. 이 단어가 얼마나 맘에 들었는지 사람들은 기존의 U-시티 법을 아예 고쳐서 유비쿼터스시티를 죄다 스마트시티로 바꿔 버렸다. 여러 가지 신기술을 통해 도시 문제가 해결되는 도시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스마트시티는 기존의 도시와 차별화될 수 없다.


첫째, 신기술을 적용해 만드는 도시라는 건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도시를 지탱하는 기술은 언제나 꾸준히 발전해 왔고 그에 따라 도시도 발전해 왔다. 스마트시티법에 따르면 ‘건설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융복합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를 스마트시티라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는 이미 스마트시티이다.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도시서비스들은 알고 보면 엄청난 신기술의 집합체들이다. 대중교통 환승 시 이동구간에 따라 요금 할인 폭이 달라지고, 정류장에 서 있으면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예상 대기시간을 알 수 있으며, 광역버스는 버스 외벽에 잔여 좌석 수가 표시된다. 모든 택시는 GPS 내비게이션을 사용해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에 대한 안내를 받는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주차시설은 이제 주차 카드를 뽑지 않고 번호판 인식으로 입장하며, 건물 내 상점에서 주차 할인을 받을 경우, 내차 번호 네 자리를 점원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도시서비스가 첨단기술을 활용해 제공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는 도시 전역에 걸쳐 매우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통신망과 전력망 외에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오차 없는 센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서비스들은 대부분 첫 번째 아이폰이 나온 시기보다 늦게 대중교통 서비스에 도입됐을 만큼 새로운 기술들이다. 유비쿼터스시티나 스마트시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사람들은 막연히 ‘첨단 기술로 만드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도시’를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고 청사진을 만들었겠지만 도시는 언제나 쉼 없이 꾸준히 기술적으로 발전해 왔다. 기술은 많은 도시의 과제를 해결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도시 문제들은 개선되고는 있지만 언제 어느 수준으로 개선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시를 구성하는 기술의 이러한 속성을 이해하고 나면 ‘스마트시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둘째, 그렇다면 매우 획기적인 기술로 인해 지금과는 크게 다른 도시를 만들 수 있다면 스마트시티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다 하더라도 도시는 획기적으로 변할 순 없다. 도시가 가진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생물 종들은 진화할 때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에서의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와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경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도시도 이러한 경로의존성을 매우 강하게 갖고 있다. 도시 인프라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술이 나와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순 없다. 인프라 교체시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시민들에게 하루아침에 그 방식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일반도로에 오직 자율주행차만이 달리게 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게 사람에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고 자율주행차의 운전능력은 언젠가 인간을 까마득히 앞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율주행차의 개발에서 가장 큰 난관을 겪고 있는 분야는 인간이 운전하는 차량과의 상호작용이다. 사람의 도로운전을 금지시키고 일반도로를 자율주행차 전용도로로 만든다면 현재 연구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율주행 중심의 미래 교통시스템에 보다 빨리 다가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는 경로의존적 발전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기술은 많지만 그것을 도시에 적용하려면 대부분 경로의존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유일한 해법은 기존의 시스템과 공존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로의존성은 스마트시티인 것과 스마트시티가 아닌 것의 구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셋째, 우리가 안고 있는 도시 문제는 첨단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만약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도시 문제가 있다면 스마트시티의 개념을 빌리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하다. U-시티법을 스마트시티법으로 개정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U-시티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취지로 몇 가지 개념이 추가되었고 이는 개정된 법이나 시행령 또는 정부의 기본계획에도 반영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민간의 참여 기회를 늘려 정부 주도에서 탈피하고, 교통, 방범 등 도시 인프라 중심에서 벗어나 행정,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며, 신도시 중심의 개발사업에 국한했던 것을 도시재생을 포함하여 기존 도시에까지 그 적용 대상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스마트시티와 상관없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고, 또한 스마트시티법과 상관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행정의 스마트화는 정부가 ‘국가정보화기본계획’을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한때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는데 U-시티 또는 스마트시티와는 관계가 없다. 교육 분야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2002년부터 구축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이 또한 스마트시티와 관계없다. 다시 말하면 스마트시티가 말하는 차별점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도시 기능 즉 인프라 영역을 제외하면 차별화할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은 것일 뿐 그것이 도시 기능과 결합하면 무엇이 어떻게 더 좋아지길래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다양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의 흐름을 보면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불평등, 고령화, 사회갈등, 실업과 같은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도시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첨단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도시서비스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도시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시민이 바라는 도시의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해 때로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너무나 크고 넓으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를 모두 아우를 큰 틀에서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의미 없을 만큼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또한 스마트시티는 U-시티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문제 해결에 있어서 기술이 갖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지금 무엇이 진정으로 스마트한 도시인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서울시산학연협력포럼에서 요청받고 쓴 글임

Posted by jujaeu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