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길고양이

비온 뒤

jujaeuk 2025. 4. 18. 02:34

2011. 11. 7. 01:14

일요일 오후, 방에서 사료를 들고 밥을 주려고 나왔더니 못보던 녀석이 쓰레기통 옆에 앉아 있다. 가만 보니 보름 쯤 전에 본적 있는 2호와 같은 무늬다. 애들이 쓰레기 통 근처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생선사료 빈 껍데기를 난 그 쓰레기통에 버렸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이틀전 고양이 사망 사건 이후로는 음식에 이상이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먹다 남긴 건사료 접시를 회수하여 같은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이다.

 

내가 다가가니 2호는 도망가 버렸다. 근데 2호는 가고 없는데 쓰레기통 있는데까지 가 보니 3호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볼 땐 늘 나무 숲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던 3호가 오늘은 왠일로 오픈스페이스로 당당히 나왔다. 젖은 숲속이 싫었는지 아니면 이제 내가 안 무서운 건지. 그래서 고양이 참치를 오늘은 다른 곳에다 놔 봤다.

 

예전엔 1회용 접시에 담아서 나무 사이로 깊숙히 넣어 줬는데. 솔직히 오늘은 좀 성의 없이 주긴 했다. 그릇도 없이 맨 바닥에다, 저 사료는 아기고양이 용이 아닌 성묘용이다. 일단 냄새 맡고 먹으러는 온다.

 

좀 깔짝 거리는 거 같더니

 

뭔가 좀 이상하다. 평소때랑 달라서 그런가? 잘 안 먹는 거 같다.

 

얼씨구, 결국 저렇게 많이 남겨 놓고 쌩 한다. 카메라를 너무 들이 대서 그런가? 암튼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잘못한 게 너무 많다.

 

"내가 아무리 빌어 먹는 길냥이지만 밥을 줄거면 제대로 줘야 하 거 아냐?"

 

그래서 성묘용 건사료를 새 접시에 담아서 원래 3호가 먹던 자리로 가지고 갔다. 3호, 날 보더니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간다.(한 손에 사료를 부은 접시를 들고 있어서 이동 중 사진촬영 불가능)

 

3호가 우는 소리는 예전에 딱 한번 1호랑 같이 있을 때 1호 앞에서 들은 적 있다. 3호는 고양이한테만 말을 하고 사람한테는 전혀 소릴 내지 않는다.(너도 어디 나이 먹어서 발정기가 돼 봐라. 안 우나 보자.) 이번에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접시에 사료를 가득 부어 원래 자리로 옮겨 놨더니 바로 뒤 나무 숲에 2호가 숨어 있었다. 3호는 사료가 있는 곳까지 달려 오더니 2호 한테 소리를 냈다. 밥을 혼자 먹으려고 쫓는 소리로는 안 들렸다. 오히려 밥이 여기 있으니 오라고 부르는 소리에 더 가까왔다. 근데 2호는 밖에 내가 서 있으니까 무서웠는지 나올 생각을 안하고 밥 근처에도 안 온다. 3호는 할 수 없이 혼자 나와서 밥을 먹는다.

 

3호가 버리고 간 아까 그 생선 사료가 너무 아까왔다. 그냥 놔두면 썩을지도 몰라서 다시 가서 접시에 긁어 담았다. 봤더니 3호는 밥을 먹다 말고 날 따라 왔더라고... 난 접시에 담은 생선 사료를 갖고 가서 아까 그 건사료 접시 위에 쏟아 부었다. 3호는 그제서야 생선 사료를 좋다고 먹는다. 2호는 여전히 바로 뒤에 숨어서 안 나오고...

 

3호가 밥을 좀 먹다가 다시 아까 그 오픈 스페이스로 이동한 사이, 숨어 있던 2호가 마침내 나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밥을 먹다 말고 숨어 버렸기 때문에 멀리서 볼 수 밖에 없었다. 망원렌즈가 없는 꾸진 내 똑딱이. 원거리에서 2호 밥먹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어서 다 날렸다.

 

성묘용 생선 사료 먹어 보니 맛있지? 건사료 위에 생선만 낼름 다 먹고 나서는 아까 내가 사료 긁어 간 그자리로 다시 와서 찌꺼기를 줏어 먹고 있다.

 

"생선 더 없어? 더 없냐고..."

(있긴 있는데 좀 아끼자. 돈 주고 사는 거다.)

 

"칫. 그까짓 거 한봉지 천원 밖에 안 하는 거 갖고 쪼잔하게..."

 

이제 확실히 3호는 영역이 넓어 졌다. 성격도 꽤 씩씩해졌다. 이렇게 나무가 별로 없는 곳도 나와서 막 돌아다닌다.

 

한편, 3호가 밥을 먹다 말고 놀러 간 사이에 마침내 숲에서 나와 밥을 먹느라 정신 없는 2호. 이 이상 가까지 다가갈 수가 없다.

 

더 가까이 가면 이렇게 먹다 말고 도망을 간다. 덩치는 3호 보다 훨씬 크면서 왤케 겁이 많냐.

 

사람이 떨어져도 거의 죽을 거 같은 높이의 담벼락. 식사를 마친 3호가 간도 크게 저기 앉아 있다. 보는 내내 불안하다.

 

멀리서 2호 밥 먹는 모습 (결국 다 버린 사진) 찍는 동안 바로 옆에 와 있던 3호. 이렇게 가까이서 정면으로 찍는데 도망도 안 가고 포즈까지 취해주다니 정말 많이 컸다. 3호.

 

다 좋은데 거기 그 아찔한 곳에서 좀 내려 오며 안 되겠냐. 보는 사람이 너무 불안하다.

 

"흥, 남이사. 당신이 내 아빠야?"

 

뭐 어쨌든 3호에게는 사람 근처에 있다가 잡히는 거보다 저기 있는 편이 차라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그루밍까지 한다.

 

얘네들은 날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게 아닌 거 같다. 다가가면 도망가지만 내가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인다. 곁에 있고 싶지만 너무 가까운 건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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