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을 다룬 책은 요즘 엄청 많다. 그 중에 내가 이 책을 고른 건 전에 양면시장에 관한 문헌들을 보다가 이 사람 이름을 본 적 있어서다. 이 책의 저자 중 마셜 밴 앨스타인과 제프리 파커는 오래 전에 토마스 아이젠만이랑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양면시장 전략에 관한 기고를 한 적이 있다.

 

"플랫롬 레볼루션"은 이미 매우 유명한 현상이 되어 버린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해서 쓴 책이다. 구글, 애플, 페북이 앱스토어와 광고로 디지털 공간에서 양면시장 플랫폼의 공식을 정립한 애들이라면 에어비앤비와 우버는 IT를 기반으로 한 양면시장 플랫폼을 현실세계로 확장한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성공한 플랫폼 기업들의 풍부한 사례와 함께, 이 책은 플랫폼이 성공하는 경제학적 원리인 양면시장 이론을 일단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다음에, 플랫폼을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설명해 놨다. 마치 플랫폼 비즈니스를 실제로 하려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교과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옛날엔 IT 분야에서 플랫폼이라 하면 '운영체제'를 일컫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요즘은 플랫폼 하면 양자의 거래를 매개하는 사업을 가리키는 의미로 훨씬 더 많이 쓰인다. 잘 만든 플랫폼 하나가 IT 기술을 만나면 적은 돈으로 순식간에 전지구적인 스케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옛날 기업이 몇십년 걸려 이룩한 성장을 불과 몇년 만에 이뤄내는 일이 일어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네트워크 효과 (=망 외부효과) 때문이며, 요즘은 조금 더 정교하게 양면시장으로 설명하며, 이 책에서 아주 쉽게 설명해 놨다. (사실 양면시장 이론에 관한 부분은 이 책에서 설명한 것 이상으로는 학술적으로도 별 의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는 양면시장 효과와 마찬가지로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효용도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휴대전화를 예로 들면, 우리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단 두명 밖에 없다면 갖고 있는 사람한테는 큰 자랑은 되겠지만 그다지 쓸모는 없을 것이다. 대신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면 내가 가진 휴대전화가 엄청 유용해질 것이다. 딱히 품질을 개선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상품의 가치가 높아진다. 이런 게 네트워크 효과다.

 

네트워크 효과는 규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같은 품질의 네트워크 상품이 경쟁할 경우, 한 사람이라도 고객이 더 많은 상품이 더 높은 효용을 가져와 그로 인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당기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한 기업이 시장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는, 이른바 '자연독점(누가 잘하고 잘못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되는 독점)'이 발생한다. 독점이 되면? 독점 기업이 가격을 자기 맘대로 올릴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볼 것이다. 더군다나 교통, 통신, 전력 등 네트워크 산업은 필수재인 경우가 많아서 소비자는 가격이 올라도 수요를 줄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이론상 네트워크를 민간이 독점하면 헬게이트가 열린다. 그래서 모든 정부는 네트워크 산업을 민간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관리하거나, 아니면 매우 높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상태로 민영화한다.

 

양면시장 효과는 둘로 나뉜 소비자 그룹을 서로 연결해주는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의 일종이다. 에어비앤비 같은 경우, 묵을 곳을 찾는 투숙객 입장에서 나 말고 다른 에어비엔비 투숙객이 늘어나는 게 딱히 나한테 좋을 이유는 없다. 대신에 에어비앤비에서 빈방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투숙객인 나한테는 좋을 것이다. 그런데, 빈방 제공자 입장에서는 투숙객이 많아질수록 좋을 것이다. 즉, 매개되는 소비자 그룹을 둘로 나눴을 때 내가 속하지 않은 쪽 소비자가 늘어남으로써 나의 효용이 증가하는 것을 더 어려운 말로 "긍정적 교차 외부효과(positive cross-group externality)"라 하고 이것이 대표적인 양면시장 효과이다.

 

그럼 플랫폼이 아닌 기존의 기업을 뭐라고 부를까? 책에서는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른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최종재 또는 최종서비스가 만들어지기까지 한줄로 (파이프라인처럼) 연결된 모든 과정을 기업이 직접 관여해 만들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에게 이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평가와 피드백 같은 것들을 이용해 품질이 자율적으로 유지되도록 할 수가 있다. 품질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게이트키퍼"가 필요 없고, 소비자 커뮤니티를 통해 그것이 훨씬 더 잘 이루어지기 때문에 파이프라인은 플랫폼한테 밀릴수 밖에 없다고 한다. 플랫폼의 비즈니스 철학이란, 대체할 수 없는 핵심 기능에 대한 주도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머지 부분을 최대한 개방함으로써 고객을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는 데 있다. '개방'이란 단기적으로는 자기 살을 내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겠지만 결국 업스케일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

 

그렇다고 플랫폼이 만들기면 하면 장땡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플랫폼이 성공해 개나 소나 이용하게 되면 커뮤니티가 혼탁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용자가 빠져나가지 않고도 쓰레기 이용자를 효과적으로 걸러내도록 하는 문제가 플랫폼이 다음 단계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인데 이걸 "큐레이션 매커니즘"이라 부른다. 초창기에 성공적인 플랫폼 중에 이걸 잘 못해서 결국 망한 기업에 관한 내용도 소개된다. 에어비앤비나 우버는 소비자 평가에 의해 평점이 낮은 이용자 또는 제공자를 필터를 통해 매칭에서 걸러내거나 아니면 그들끼리 매칭시킴으로써 다수의 건전한 소비자들이 질 나쁜 소비자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일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였다.

 

그 밖에, 플랫폼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다. 파이프라인은 어떻게 대응할까, 성공적인 플랫폼들의 전략은 어땠나, 규제는? 미래는?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다 건너 뛰는 이유는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비즈니스의 성공을 결정하는 건 "엄청 잘 만든 서비스와 상품"일 거다. 그래도 요즘 잘 나가고 있는 플랫폼 기업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시장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다면 읽어 보면 매우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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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때 읽은 책, 맥스 태그마크의 "라이프 3.0"  (0) 2018.06.20
Posted by juj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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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공지능을 포함하여 생명의 미래에 관해 가장 멀리까지 전망하고 거기에 대응해 지금 인류가 해야 할 일을 적은 책이다. 물리학자가 썼기 때문에 과학적 신빙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저자는 어느 다른 책보다 큰 상상력을 발휘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사람으로 있기(begin huma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스웨덴 출신의 물리학자로 학부때 경제학을 했다가 전공을 물리로 옮긴 약간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과에서 경제로 옮긴 사람만 많이 봐서...) 최근에 발달한 인공지능(딥러닝이라던가)을 다뤘다기 보다는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야기했다. 저자는 지능을 가진 개체는 자연이든 인공이든 모두 생명으로 보고, 기술을 통해 자신의 하드웨어(사람으로 치면 뼈하고 근육?)를 얼마든지 재설계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춘 인공 생명이 생명의 다음 단계(3.0)라고 주장한다. (넘버링은 책 마케팅에서 매우 중요하다.) 초반부 래리 페이지와의 대화에서 지구 인류가 언젠가는 우주로 나갈테고 그땐 지금의 사람 몸으로는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인공지능의 우월성을 이야기한 장면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이정도 논리를 메스꺼움 없이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이 판치는 미래에 자연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굳이 관심사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언젠가 사람을 능가할수도 있는 범용인공지능의 목적이 사람의 목적과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까를 후반부에 심도 있게 다뤘다. 그래서 엘론 머스크를 설득해 거액의 연구비를 타내고, 생명의 미래 연구소를 만들어 범세계적인 AI 안전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소개되었다. 그래서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보다 훨씬 자세한 "아실로마 원칙"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아마도 최근에 KAIST의 국방 AI 연구에 대응해 글로벌한 보이코트가 있었던 배후에 얘네들이 있었지 싶다.

 

맥스는 우리 인류의 미래를 굳이 낙관적으로 보는 거 같진 않지만 기술의 발전 가능성이나 전망에 대해서는 극도로 긍정적이다. 즉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거의 뭐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반면 과학자들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인 지적 외계생명체를 만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봤는데 그건 나름의 근거를 달아 놨다. 이를테면 과거 공룡은 인류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하며 번성해 왔지만 지적 생명체로 진화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들어 그것이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한다던가...

 

생명의 한계에 대한 과학적 디테일이 들어간 설명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최근 연구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만 관심사인 나에게는 읽다가 "그만해, 이 미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쓸데 없이 자세하게 다루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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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j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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